260614 "당연한 대답"
당연한 대답
지난 금요일, 한국과 체코가 월드컵 같은 조에서 첫 경기를 치렀습니다. 그날 이후로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비슷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프라하 사시는데, 그날 어디 응원하셨어요?" 다들 웃으며 묻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건 질문이 안 됩니다. 답은 너무 당연합니다. "한국이죠, 당연히."
13년 넘게 이 도시에서 살았습니다. 체코 음식이 익숙하고, 거리 이름도 외우고, 이웃들과 정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월드컵에서는 한국을 응원합니다. 거주지가 바뀌었다고 국적이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디 살든, 저는 한국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할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이 땅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입니까?"
성경은 이 질문에 망설임 없이 답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이렇게 씁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빌 3:20). 여기서 '시민권'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소속감이 아닙니다. 신분, 국적, 법적 지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땅 어디에 살든, 우리의 진짜 신분증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이 모습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인물은 요셉입니다. 요셉은 이집트에서 총리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이집트식 이름을 받았고, 이집트 여인과 결혼했고, 그의 아들들은 이집트에서 태어났습니다. 누가 보아도 그는 완전히 이집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기 전 남긴 말은 정반대였습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돌보시고… 내 해골을 여기서 메고 올라가라"(창 50:24-25). 평생 이집트에서 살았고 이집트의 정점에 올랐던 사람이, 마지막 순간 자신이 진짜 속한 곳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거주지가 그의 정체를 바꾸지 못했습니다.
요셉만이 아닙니다. 이 도시 프라하를 생각하면 얀 후스도 떠오릅니다. 그는 보헤미아 사람이었고, 보헤미아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충성을 바친 대상은 보헤미아의 권력이나 교회 제도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최종 소속은 다른 곳에 있었고, 그 사실이 흔들리지 않았기에, 그는 화형대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 "당신은 누구 편입니까"라는 질문은, 우리에게 "어디 응원하세요"만큼이나 당연한 질문이었을 겁니다.
문제는 우리입니다. 우리는 이 질문 앞에서 종종 망설입니다. 직장에서의 평가, 통장의 숫자, 자녀의 성적, 사람들의 인정 — 이런 것들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의 정체성이 그것들에 의해 정해지기 시작합니다. 마치 오래 살다 보니 어느 나라를 응원해야 할지 헷갈리게 된 사람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거주지는 거주지일 뿐, 신분이 아닙니다.
이번 주, 무언가를 결정하거나 무너지는 순간이 온다면, 이렇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지금 어디 사람으로 반응하고 있는가." 이 땅의 평가에 흔들리는 사람으로 반응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미 정해진 신분을 가진 사람으로 반응하고 있는가.
한국에 있는 분들이 "그날 어디 응원하셨어요"라고 물었을 때, 저는 망설임 없이 웃으며 답했습니다. "한국이죠." 그 망설임 없음이, 사실은 우리 신앙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당신은 진짜 누구입니까"라고 물을 때, 우리도 그렇게 당연하게, 망설임 없이 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이원희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