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809 "큰 집"
큰 집
어릴 적 저는 개척교회 목사님의 아들로 자랐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 이야기들이 참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는 기억은, 반지하 건물의 삼분의 일을 막아 사택으로 쓰고 나머지를 본당으로 사용하던 우리 집입니다.
반지하라 해가 들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은 방과 후면 늘 전도를 나가셨고, 저는 그 어둑한 집에 들어가기가 그렇게도 싫었습니다. 나무 판자로 겨우 공간을 나눠놓은 방에서, 밤이면 벽 너머로 쥐가 찍찍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습니다. 언젠가 그 쥐가 눈앞에 나타났던 날, 어린 저는 그저 얼어붙어 있었고 어머니가 손수 그것을 잡으셨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지금은 웃으며 추억처럼 이야기하지만, 그때는 참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왜 우리 집은 지상이 아닌지, 비가 오면 왜 물이 스며드는지, 곰팡이의 퀘퀘한 냄새는 왜 그리도 익숙했는지... 어린 마음에 참 많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 베니스에서 열린 교역자 가정 수련회를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한 목사님 가정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해외에서 본당과 사택을 모두 소유한 한인교회로 부임하셨다는 소식에, 저는 부럽다는 말이 먼저 나왔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제가 상상했던 것과 달랐습니다. 건물은 있었지만, 사택은 옥상에 무허가로 지어진 가건물이었습니다. 창문 하나 없는 집, 다락으로 이어지는 곳에는 쥐가 살아 매일 저녁 찍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고 하셨습니다. 제 어릴 적 사택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그 가정에는 두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전에 살던 집보다 교회 건물 전체가 훨씬 크다 보니, 아이들은 그것을 그대로 자신들의 집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와, 우리 큰 집으로 이사왔다!" 하며 기뻐하고 감사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어릴 적 제 기억이 떠올라서이기도 했고, 동시에 어느새 감사를 잃어버린 저 자신을 위한 눈물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같은 옥탑방, 같은 쥐 소리 안에서도 누군가는 결핍을 보고 누군가는 큰 집을 봅니다. 환경과 상황은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빌립보서 4장에서 바울은 감옥이라는 극한의 결핍 속에서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바울에게 배움이었던 것처럼, 자족과 감사도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훈련되고 배워지는 것임을 다시 생각합니다.
우리 각자에게도 저마다의 반지하가 있고, 저마다의 옥탑방이 있을 것입니다. 빛이 잘 들지 않는 시간, 원치 않는 소리를 들으며 견뎌야 하는 계절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고 계신 것 같습니다. 지금 당신은 그 집을 무엇으로 보고 있느냐고. 결핍의 집으로 보고 있느냐, 아니면 감사할 큰 집으로 보고 있느냐고 말입니다.
오늘도 저는 그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떠올리며, 제게 주어진 자리를 다시 바라봅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저와 우리 성도들의 눈이 열려, 지금 서 있는 이 자리를 하나님이 주신 큰 집으로 볼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그 시선의 회복이야말로, 오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은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이원희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