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906 "밤 11시 55분의 시험지"
밤 11시 55분의 시험지
지난 8월 28일부터 30일까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제2회 전교인 수련회를 참 감사하게 마쳤습니다.
수련회에서 돌아온 날, 피곤한 몸으로 짐을 풀고 이것저것 정리한 뒤 이제 자려고 누우려는데 밤 11시 55분, 집주인에게 메일 한 통이 왔습니다.
“올해 안에 집을 비워주었으면 합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집주인의 가족이 직접 사용한다는 것이었지만, 그동안 주변에 비해 많이 오르지 않은 월세도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중요한 것은, 오랫동안 살아온 집을 몇 달 안에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한동안 메일을 바라보다가 헛웃음이 났습니다.
“주님, 수련회 끝나자마자 바로 실습입니까?”
불과 몇 시간 전까지 강단에서 “은혜받았다는 증거는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문제 속으로 주님과 함께 내려가는 것입니다”라고 설교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제 일이 되니 당장 이사 갈 집부터 보증금, 아이들 학교, 아내의 수업까지 여러 생각이 한꺼번에 머리를 스쳤습니다. 설교할 때의 믿음과 밤 11시 55분의 믿음이 꼭 같지만은 않았습니다.
며칠째 집을 알아보고 있지만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처음의 당황스러움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우리 가정이 계획한 대로만 살아온 것도 아니었고, 예상하지 못했던 길이 오히려 더 좋은 길이었던 적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좋은 집을 구하게 해주십시오”라고만 기도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주님, 우리 가정이 있어야 할 자리로 인도해 주십시오.”
수련회에서 받은 은혜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찾아온 밤 11시 55분의 메일.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제게 설교한 말씀을 다시 설명하신 것이 아니라, 이제 직접 살아보라고 하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은혜는 마음이 뜨거웠던 순간보다, 그 은혜가 정말 필요한 일이 찾아왔을 때 더 분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번 한주도 하나님의 은혜안에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자들이기에 그렇습니다.
- 이원희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