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816 "광복절 단상"
광복절 단상
해방된 지 어느덧 81년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친일파니 일제 잔재 청산이니 하는 말들이 오르내립니다. 얼핏 보면 지나간 과거의 이야기 같지만, 81년이 지나도록 이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지난주 한 연예인의 가족사가 파묘되어 그 조상의 친일 행적이 드러나고 온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는 것을 보면서, 저 역시 그 대열에 서서 함께 안타까워하고 함께 분노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나라면, 그 시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이 질문은 낯설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체코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던지게 하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공산 정권 치하의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국가가 종교 업무를 관장하는 기구를 두어 성직자의 활동 전반을 감독했고, 국가의 승인 없이는 목사도 신부도 강단에 설 수 없었습니다. 설교 내용은 검열의 대상이었고, 정권에 협조적인 성직자들의 조직이 따로 만들어져 그들을 통해 교회를 관리하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그 시절 적지 않은 목회자들이 정권의 요구에 순응하며 체제의 나팔수 역할을 감당했고, 반대로 침묵 속에서 지하 신앙 공동체를 지키며 저항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벨벳 혁명 이후 체코 교회가 마주해야 했던 것은 바로 이 물음이었습니다. 그 시대, 우리 교회는 누구의 편에 서 있었는가.
민족의 아픈 역사 앞에서든, 체제의 압제 앞에서든, 신앙인에게 던져지는 질문은 결국 하나입니다. 편안함과 안전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진리와 양심을 택할 것인가. 갈라디아서 5장 1절은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여기서 자유는 단지 정치적 해방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어떤 권력 앞에서도, 어떤 시대의 압력 앞에서도 굽히지 않는 진리에 붙들린 자유입니다.
우리는 이런 시대가 다시 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될 수 있고, 우리는 크고 작은 순간마다 침묵할 것인가 말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그 선택의 기준은 언제나 하나여야 합니다. 사람의 눈치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길. 81년 전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것도, 체코의 신실한 성도들이 지하에서 지켜낸 것도 바로 그 자유였음을 기억하며, 오늘 우리도 그 자유 안에 굳게 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