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칼럼

260726 그리스도인이 쓰는 언어의 중요성

관리자 등록일 : 2026. 7. 26.

그리스도인이 쓰는 언어의 중요성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며 이웃과 나누는 무수한 말들 속에는, 오랜 시간 우리 문화에 깊이 스며든 정서와 숨결이 담겨 있습니다. 누군가를 만나 반가울 때 “참 귀한 인연입니다”라고 미소 지으며 인사하거나, 장례식장에서 유가족의 두 손을 꼭 맞잡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며 애도의 마음을 전하는 일들이 그렇습니다. 목회자인 저 역시 성도님들과 삶을 나누는 일상 속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러한 표현들을 꺼내어 놓곤 합니다. 상대를 아끼고 위로하려는 따뜻한 진심이 앞서다 보니,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고 온기 있는 언어를 무심코 빌려 쓰게 되는 까닭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우리가 숨 쉬듯 사용하는 이 단어들의 뿌리를 가만히 헤아려보며, 우리 그리스도인의 입술에 어떤 고백을 담는 것이 우리의 신앙을 더욱 아름답게 빛낼 수 있을지 묵상하게 됩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인연(因緣)’은 원인과 조건이라는 불교의 연기설에서 비롯된 단어입니다. 이 넓은 세상에서 누군가와 옷깃을 스치고 마음을 나누게 된 것을 표현하기에 참으로 시적이고 아름다운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만남의 신비’는 얽히고설킨 업보나 맹목적인 법칙 그 이상입니다.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세밀한 계획과 ‘섭리(Providence)’가 그 바탕에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참 귀한 인연이네요”라는 말의 자리에,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참 감사한 만남이네요” 혹은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오묘한 섭리입니다”라는 고백을 채워 넣을 때, 우리의 평범한 일상어는 그 자체로 하나님을 향한 작은 찬양이 됩니다. 죽음의 깊은 슬픔 앞에서 위로를 전하는 ‘명복(冥福)’이라는 단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어두운 명부(저승)에서의 복을 빈다는 옛사람들의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죽음 너머에 어둡고 두려운 세계가 아닌, 눈부시게 밝은 하나님 나라와 부활의 소망이 있음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슬픔에 잠긴 이들에게 “하나님의 참된 평강과 위로가 함께하시길 빕니다”라고 전하는 것은, 우리가 가진 가장 위대한 생명과 소망의 복음을 이웃에게 조용히 흘려보내는 귀한 통로가 됩니다. 우리의 일상어를 하루아침에 모두 바꾸거나, 완벽하고 정제된 신앙의 용어만을 고집하자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언어란 단숨에 바뀌는 것이 아니며,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세상의 익숙한 언어와 은혜의 언어 사이에서 조금씩 다듬어져 가는 여정 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의 언어가 곧 우리의 마음과 믿음을 빚어내는 그릇이기에, 내 입술의 고백을 생명의 단어들로 천천히 채워가는 그 과정 자체가 참으로 복된 신앙의 훈련임을 나누고 싶습니다. ‘운이 좋았다’는 말 대신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할 때, 우리의 시선과 호흡은 매 순간 주님을 향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한 주간 우리의 일상 속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묻어나는 따뜻한 섭리의 언어들을 한 스푼씩 더 담아보면 어떨까요? 우리의 따뜻한 눈빛과 함께 건네지는 은혜와 소망의 말들이, 메마른 세상을 적시고 누군가의 영혼을 다독이는 생수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 이원희 담임목사

목록